[전문가 포럼] ICT 소비국은 ICT 강국이 될 수 없다

입력 2016-10-03 18:34  

외산 시스템 위에 세운 ICT 강국의 꿈
국내산업 육성 외면, 국가R&D도 축소
선택과 집중으로 기술발전동력 키워야

박진우 < 고려대 교수·공학 >



지금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ICT 강국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거 모습에 집착해 현재를 보지 못하는 착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유감스럽지만 그런 착각으로 만들어진 국가정책의 오류로 인해 2000년 초반까지 쌓아놓은 한국 ICT의 공든 탑이 더 빨리 무너져 내렸다.

스마트폰산업을 우리 ICT계의 강점으로 생각한다면 삼성전자와 LG전자 그리고 이들과 연관된 일부 계열사 외에 눈에 띌 만한 성과를 올리는 ICT 기업이 하나라도 있는지 살펴보라. 스마트폰 사업에서도 디스플레이, 반도체 메모리와 일부 시스템을 제외하면 소프트웨어(SW) 플랫폼을 비롯한 대부분이 해외 부품과 솔루션으로 채워져 있다. 이동통신 솔루션인 롱텀에볼루션(LTE)도 해외 솔루션이라는 점에서 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삼성전자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불철주야 고민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고속 네트워크도 마찬가지다. 통신사업자가 운영하는 네트워크 장비와 SW 솔루션 대부분이 미국 시스코, 중국 화웨이 등의 제품으로 채워져 있다. 무선통신의 주역인 와이파이(WiFi) 역시 그 핵심부품은 우리가 만들지 못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최신 분야의 각종 핵심기술도 뒤처져 있다. 지금 우리는 해외 기업이 주도하는 핵심 기술과 서비스를 뒤따라 갈 수밖에 없는 ICT 소비국가에 머물고 있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해외에서 들려오는 화려한 ICT의 바깥 모습만을 바라보고 현실을 외면해온 정부에 원인이 있다. 한국 ICT 정책에서의 심각한 오류와 왜곡은 정부에서 시작한다. 국가정보화 평가라는 게 있다. 정보화 평가 결과에 따라 정부 담당·책임자 인사에서 웃고 우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평가점수를 올리기 위해 매년 국가 투자를 늘린다. 그런데 정보화 평가에는 ICT 네트워크 및 장비의 활용도·이용도·접근성 등 이용 측면만 항목에 들어가 있다. 어떤 제품과 솔루션으로 구성했는지는 평가 지표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국가 세금으로 해외 최고 ICT 제품을 사다가 이용을 확대하기만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국내 ICT산업은 철저히 외면한 채 해외 ICT 제품 소비만을 촉진하는 꼴이다.

2008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기획자료에는 ‘정보통신 분야는 산업체 연구개발(R&D) 투자가 활발해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는 식의 문장을 볼 수 있다. 즉 ICT 분야의 연구개발은 민간이 활발한 만큼 국가가 나서지 말라는 말이다. 2000년대 초까지 활황이었던 ICT 산업계를 두고 만들어진 정부의 논리다. 이 기조가 지금까지도 계속되면서 국가 ICT R&D 금액은 매년 5~15%씩 줄어들었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R&D는 자기 사업을 위한 투자 범위로 한정된다. 반면 국가의 R&D는 중장기적인 핵심 및 원천 기술을 생성하는 기반이다. 이를 포기했으니 국내 ICT 기술의 발전동력이 크게 악화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2000년대 초반 연 2조원에 가깝던 미래창조과학부의 ICT R&D 금액은 올해 65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이 돈은 이동통신, 네트워크, 전파위성, 방송 스마트미디어, 디지털콘텐츠, SW, 융합서비스, 정보보호, ICT 디바이스 등 더욱 다양해진 12개 분야로 흩어져 배분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2014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중이 4.29%로 세계 1위라지만 금액면에서 우리보다 3~15배의 ICT R&D 투자를 하고 있는 미국, 중국, 일본과 비교하면 너무나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의 ICT를 되살리려면 ‘선택과 집중’의 정책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미래는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ICT계의 현실을 무시하고 밝은 미래만 바라보자는 소리는 모래 위에 집을 짓겠다는 허무맹랑한 정치적인 쇼에 불과하다. 실용적이고 현실에 기반한 ICT 정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

박진우 < 고려대 교수·공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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